3화 — 아버지를 버리러 온 아들
“너도 나 입 다물게 하려고 온 거니?”
복순은 지호에게 의자를 내주지 않았다. 지호는 문 앞에 선 채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그럼 왜 성까지 바꿨어?”
“부모님이 이혼한 뒤 어머니 성으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누구인지 숨긴 건 맞습니다.”
복순은 민재의 사진을 뒤집어 놓았다. 그 앞에서는 차마 더 모진 말을 할 수 없었다.
“말해. 그날 우리 애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팔 년 전 부대 가족행사 날, 열네 살 지호는 아버지와 다퉜다. 아버지는 손님들 앞에서 웃으면서 지호의 팔을 아프게 붙잡았다. 집에 가자는 어머니 말에도 행사부터 끝내야 한다고 했다.
해가 진 뒤, 야외 벤치에 혼자 남은 지호에게 민재가 담요를 가져다줬다. 행사 때 달걀말이를 나눠줬던 형이었다. 민재는 무릎을 굽혀 아이와 눈을 맞췄다.
“추우면 안으로 와. 혼자 있지 말고.”
그러나 아버지가 자신을 찾게 만들고 싶었던 지호는 민재가 돌아간 뒤 벤치를 떠났다. 보수공사 중이던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숨어 있을 생각이었다.
연기 냄새가 났을 때는 이미 바깥 통로가 보이지 않았다. 지호는 뒤편 문을 밀었다. 문은 쇠사슬에 걸려 조금만 벌어졌다. 소리를 질러도 기침이 먼저 터져 나왔다.
그때 누군가 돌아왔다.
“지호야! 내 목소리 들려?”
벤치에서 혼자 있지 말라던 형이었다. 윤민재 이병.
민재는 자신의 겉옷으로 아이의 머리를 감쌌다. 낮은 환기구 밖으로 먼저 빠져나간 군인들이 손을 뻗었다. 지호가 밖으로 끌려 나가는 순간, 뒤쪽에서 선반이 쓰러졌다.
지호는 다시 들어가려 했다.
“오지 마! 밖에 있어!”
그것이 마지막으로 들은 민재의 목소리였다.
“아버지는 제가 숨어든 걸 알면 어머니까지 조사받을 거라고 했습니다. 어머니가 저를 제대로 안 봐서 벌어진 일로 된다고…….”
복순이 눈을 감았다.
“그때는 무서웠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살아 있는 게 들킬까 봐 무서웠습니다. 어머니가 부대 앞에 오신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했구나.”
“네.”
지호는 용서해 달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변호사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다음 날, 지호는 진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갔다. 박 대령이 전화를 걸어 “민재에 대해 네가 모르는 게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복순과 변호사도 함께 갔다.
박 대령은 아들만 방으로 들였다.
“취소해.”
“진술한 내용은 전부 사실입니다.”
“너 하나 살리려고 내가 뭘 했는지 알아?”
지호가 처음으로 아버지 눈을 똑바로 봤다.
“저를 살린 건 민재 형입니다.”
박 대령의 손이 책상을 내리쳤다. 복도까지 소리가 울렸다.

“그놈 서명 때문에 사고가 난 거야!”
그가 서랍에서 서류를 꺼냈다. 화재 이틀 전 작성된 안전점검표였다. 비상구 개방 상태, 소화장비 확인. 모든 칸에 이상 없음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확인자. 윤민재.
“확인도 안 하고 서명했어. 저 여자 아들도 깨끗한 사람 아니야.”
문이 열렸다. 복순이 들어왔다.
박 대령은 기다렸다는 듯 서류를 그녀 쪽으로 돌렸다.
“계속하시겠습니까? 아드님 잘못까지 전부 드러날 텐데요.”
복순은 종이를 들었다. 민재는 이름의 마지막 획을 늘 조금 길게 뺐다. 입대 전 가게 외상장부를 정리할 때도 그랬다.
틀림없었다. 아들의 글씨였다.

박 대령이 진정 취하서를 꺼냈다. 그 위에 펜을 올렸다.
“여기서 끝내시죠. 어머니 기억 속 아드님이라도 지키셔야지.”
복순의 손이 펜 쪽으로 움직였다. 지호가 숨을 멈췄다.
그녀가 집어 든 것은 펜이 아니라 아들의 점검표였다.
“이것도 가져가겠습니다.”
“윤복순 씨.”
“우리 애 잘못이면 내가 먼저 듣겠어요. 당신한테 덮어달라고는 안 합니다.”
문밖으로 나온 복순의 다리가 풀렸다. 지호가 다가오자, 그녀는 벽을 짚고 간신히 섰다.
“그 전화…… 끝까지 살려내야겠다.”
4화에서 — 팔 년 동안 끊겨 있던 아들의 마지막 말이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