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아들이 남기고 간 자리
“잘못을 인정한 부분부터 들려주세요.”
복순이 말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조사실에서였다. 담당 조사관이 재생을 준비하던 손을 멈췄다.
“어머님, 전부 확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애가 빼지 말라고 했어요.”
지호는 복순 곁에 앉아 있었다. 서연은 조금 떨어진 의자에서 자신의 진술 순서를 기다렸다. 세 사람 모두 이 방을 나오면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나, 확인 안 하고 사인했어.”
민재의 목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복순의 어깨가 한 번 흔들렸다. 그녀는 재생을 멈춰달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거, 없던 일로 하지 마.”
서연이 고개를 숙였다.
“다시 들어가야 돼.”
녹음이 끝나자, 복순은 오래된 전화기를 조사관 쪽으로 밀었다.
“내 아들을 흠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달라는 게 아닙니다. 도망갔다는 말만…… 그 거짓말만 바로잡아주세요.”
조사는 몇 달 동안 이어졌다. 복원된 음성만으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최초 처치기록과 통화 시각, 도현이 보관한 메일, 따로 조사받은 생존자들의 진술이 차례로 맞춰졌다.
불은 보수공사 구역의 임시 배선에서 시작됐다. 비상구를 막은 쇠사슬이 탈출을 늦췄다. 잠긴 문에 대한 경고는 사고 전에 이미 올라가 있었다.
민재가 확인 없이 서명한 사실도 기록에 남았다. 그러나 그가 불을 내고 달아났다는 결론은 뒤집혔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민재가 어느 방향으로 뛰었는지 말했다. 밖이 아니라 안이었다.
사망 시각을 앞당긴 기록은 구조 과정과 민재의 마지막 행적을 지우는 데 쓰였다. 현장에서 무엇을 보고받고도 조치하지 않았는지, 누가 허위 기록을 지시했는지도 다시 조사됐다.
박태오는 지휘 보직에서 해임됐다. 서연 역시 자신이 서명한 문서에 대한 책임을 피하지 않았다. 뒤늦은 고백으로 예전의 잘못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진술을 마친 날, 지호는 건물 앞 계단에서 아버지를 만났다. 박태오는 모자를 벗은 채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군복이 몸에 맞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지호는 몇 걸음 떨어져 섰다.
“아니요.”
“아버지가 무너지는 걸 보고도?”
“그래서 여덟 해를 못 말했습니다.”
박태오가 아들의 얼굴을 봤다.
“너만은 내 편일 줄 알았다.”
지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제 편을 들어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그날 저를 구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만, 사실대로 말해주셨으면 됐습니다.”
지호는 끝내 아버지에게 경례하지 않았다. 대신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아들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 뒤로 국밥집에도 오지 않았다. 복순에게 쌀을 보냈다가 돌려받았다. 편지에는 같은 문장을 여러 번 썼다.
‘제가 살아 있는 걸 보시는 게 괴로우실 것 같습니다.’
복순은 답장을 쓰지 않았다. 다음 면회일에 도시락을 들고 직접 찾아갔다.
지호는 가방을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그날 제가 거기만 안 들어갔어도…….”
“나도 그 생각 했다.”
복순은 말을 피하지 않았다.
“네가 미웠어. 처음에는 네 얼굴을 보면 우리 애 마지막 얼굴이 자꾸 떠올랐어.”
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민재는 알았잖니. 네가 누구 아들인지도, 안에 네가 있다는 것도. 알고 들어갔어.”
복순이 가방을 지호 손에 걸어줬다.
“그 애가 살려놓은 사람을 내가 평생 미워하고 살 수는 없겠더라.”
봄이 왔다. 지호가 휴가를 나와 국밥집 문을 열었다. 서연이 그릇을 정리하다 고개를 들었다. 복순은 말없이 밥을 담았다.
민재 사진 아래 의자는 여전히 비어 있었다. 지호가 다른 자리로 가려 하자, 복순이 그 의자를 당겼다.
“여기 앉아.”
“그 자리는…….”
“민재 대신 앉으라는 거 아니야. 뜨거울 때 밥 먹을 사람이 앉으면 되는 자리야.”
도시락 안에는 잘게 썬 파가 든 달걀말이가 있었다. 지호가 그것을 보더니 지갑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국밥집 전단이었다. 복순이 팔 년 전 직접 돌린 것이었다.
“형이 줬습니다. 불나기 전 행사 때요. 제가 혼자 앉아 있으니까 달걀말이도 나눠줬습니다.”
종이 뒤에는 민재 글씨가 있었다.
〈혼자 밥 먹기 싫으면 여기 와. 우리 엄마는 늘 한 사람 몫을 더 해.〉
복순이 전단을 뒤집었다. 모서리에 아주 작은 글씨가 하나 더 있었다. 손님에게 보여주려고 쓴 말이 아니었다.
〈엄마, 얘 이름은 지호야. 아빠랑 싸웠대. 오면 왜 왔냐고 묻지 말고 밥부터 줘. 돈은 내가 휴가 나가서 줄게.〉
복순의 손이 멈췄다.
아들이 남긴 마지막 부탁은 전화기 안에만 있던 것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아이의 지갑 안에서, 팔 년 동안 이 식탁에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복순이 전단을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호 앞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많이 늦었지.”
그녀는 한 번 숨을 고르고, 달걀말이를 하나 더 얹었다.
“그래도 왔네. 우리 아들이 보낸 손님.”
지호는 첫 숟가락을 뜨지 못하고 울었다. 복순도 말없이 울었다. 국이 식기 전에, 서연이 주방에서 뜨거운 국물을 더 가져왔다.
그날 밤, 복순은 빈 도시락을 씻었다. 여덟 해 만에 밥 한 톨도 남지 않은 도시락이었다.
사진 속 민재를 향해, 그녀가 작게 말했다.
“민재야. 밥값은 됐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