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가 집을 떠난 진짜 이유

며느리가 집을 떠난 진짜 이유

“서윤아, 넌 도대체 잘하는 게 뭐니?”

시어머니 오복자는 며느리가 끓여 온 미역국을 맛보지도 않고 숟가락부터 내려놓았다.

“우리 지혜는 회사 다니면서도 내 생일마다 호텔을 예약해. 그런데 넌 집에 있으면서 미역국 하나 제대로 못 끓이니?”

맞은편에 앉아 있던 딸 지혜가 고급 가방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엄마, 새언니한테 너무 그러지 마. 사람마다 능력이 다른 거잖아.”

말리는 척했지만, 그 말은 오히려 서윤을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복자는 딸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니까 내가 늘 말하잖아. 넌 우리 지혜 반만이라도 닮으라고.”

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식탁 끝에 앉아 있던 일곱 살 봄이의 귀를 두 손으로 가려주었다.

“할머니, 엄마 미역국 맛있어요.”

봄이가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복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누가 네 할머니니?”

순간 식탁 위의 모든 소리가 멈췄다.

복자는 서윤을 바라보며 못을 박듯 말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 데려와 키우는 것까지 내가 참아줬으면 됐지. 어디서 할머니 소리를 들어?”

서윤의 얼굴에서 마지막 온기가 사라졌다.

그날 밤, 서윤은 봄이의 옷을 여행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남편 준호가 문을 막아섰다.

“또 엄마 말 한마디 때문에 이러는 거야?”

“한마디?”

서윤은 처음으로 남편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어머니는 지난 8년 동안 매일 나를 지혜 씨와 비교했어.”

아침 일찍 일어나면 지혜는 더 부지런하다 했고,
반찬을 만들면 지혜는 더 맛있게 한다 했고,
직장을 그만두자 지혜는 자기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서윤이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시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서였다.

준호도, 지혜도 병원에 오래 머물 수 없다며 떠났을 때 서윤만 6개월 동안 복자의 곁을 지켰다.

재활 치료를 알아본 사람도, 욕창을 닦아준 사람도, 새벽마다 몸을 일으켜준 사람도 모두 서윤이었다.

그런데 복자는 회복하자마자 말했다.

“그래도 딸이 최고지. 며느리는 남이니까.”

서윤은 그 말까지도 참았다.

그러나 봄이에게 쏟아지는 모욕만큼은 더 참을 수 없었다.

“여보, 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

“알아. 그래도 조금만 참아. 엄마 칠순까지만.”

준호는 늘 그랬다.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서윤이 여덟 번의 명절과 두 번의 유산, 6개월의 간병을 견디는 동안에도 그는 한 번도 아내의 편에 서지 않았다.

그리고 칠순 잔칫날이 찾아왔다.

복자는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며느리 흉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 지혜는 이번에 회사 임원이 됐어요. 아들이 하나 더 있었으면 지혜 같은 며느리를 얻었을 텐데.”

사람들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지혜가 붉은 서류 봉투를 복자에게 내밀었다.

“엄마, 여기 사인만 해. 내가 노후 자금 알아서 관리해 줄게.”

복자는 내용도 읽지 않고 펜을 들었다.

“내 딸인데 뭘 확인하니?”

그러자 조용히 앉아 있던 서윤이 처음으로 지혜를 막아섰다.

“어머니, 서명하시면 안 돼요.”

지혜의 얼굴이 굳었다.

“새언니가 뭔데 우리 집 일에 끼어들어?”

“그건 노후 자금 관리 동의서가 아니에요.”

서윤이 봉투 안의 서류를 꺼냈다.

“어머니 아파트를 담보로 7억 원을 대출받기 위한 위임장이에요.”

잔칫상이 술렁였다.

하지만 복자는 서류보다 딸의 얼굴을 먼저 보았다.

“지혜야, 사실이니?”

지혜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눈물을 글썽였다.

“사업 때문에 잠깐 필요한 거야. 내가 엄마 집을 뺏겠어?”

그 순간 복자의 분노는 뜻밖에도 서윤에게 향했다.

“감히 내 딸을 도둑으로 몰아?”

“어머니, 등기부와 대출 신청 내역까지 확인했어요.”

“입 닥쳐!”

복자가 물잔을 집어 던졌다.

유리잔은 서윤의 발밑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네가 우리 지혜를 질투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아이도 못 낳고 남의 아이나 데려다 키우면서 감히 내 딸 앞길을 막아?”

그 말에 봄이의 작은 몸이 떨렸다.

“엄마…….”

서윤은 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더는 울지도, 변명하지도 않았다.

서윤은 식탁 위에 집 열쇠와 결혼반지를 내려놓았다.

“어머니 말씀대로 저는 이 집안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준호가 황급히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서윤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신이 한 번이라도 우리 편에 서주길 기다렸어.”

서윤은 남편의 손을 밀어냈다.

“그런데 오늘도 당신은 가만히 있네.”

준호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윤은 봄이의 손을 잡고 잔칫집을 떠났다.

그날 이후 그녀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이혼 서류를 보냈다.

복자는 오히려 큰소리쳤다.

“갈 테면 가라지. 애 못 낳는 며느리 없어도 우리 아들은 다시 장가가면 돼.”

그러나 한 달 뒤, 지혜가 잠적했다.

복자의 인감도장과 통장도 함께 사라졌다.

이미 아파트에는 7억 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었다. 지혜는 어머니 명의로 돈을 빌린 뒤 해외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복자는 그제야 서윤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그다음이었다.

지혜의 방을 뒤지던 복자는 서랍 깊숙한 곳에서 낡은 산모 수첩을 발견했다.

수첩에는 8년 전 출산 기록과 함께 아이의 발도장이 찍혀 있었다.

여아. 출생 당시 이름, 한봄.

복자의 손이 떨렸다.

“봄이……?”

그날 저녁, 준호는 결국 어머니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지혜는 아이를 낳자마자 병원에 버리고 사라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준호가 아이를 데려왔고, 당시 소아과 의사였던 서윤이 봄이를 맡았다.

서윤은 지혜의 앞날을 막지 말아 달라는 준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결혼 후에도 아이의 출생 비밀을 숨긴 채 자신의 딸처럼 키웠다.

“그럼 봄이가…….”

“엄마가 그렇게 자랑하던 딸이 버린 아이야.”

복자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자신이 ‘근본 없는 아이’라고 모욕했던 봄이는 친딸 지혜가 낳은 자신의 외손녀였다.

복자는 곧장 서윤이 일하는 작은 소아과로 찾아갔다.

비가 쏟아지는 밤이었다.

진료실 불이 꺼지고 문이 열리자 흰 가운을 입은 서윤과 봄이가 함께 나왔다.

“서윤아!”

복자가 빗속에서 무릎을 꿇었다.

“내가 잘못했다. 봄이가 내 외손녀라며? 이제 내가 데려가마.”

서윤은 봄이를 자신의 뒤로 감췄다.

“왜요?”

복자가 고개를 들었다.

“뭐?”

“어제까지는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땐 몰랐으니까…….”

“피가 섞였다는 걸 알아야만 사랑할 수 있는 아이라면, 어머니는 봄이의 할머니가 아니에요.”

복자는 울며 서윤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그래도 넌 내 며느리잖니. 다시 돌아오면 내가 잘할게.”

서윤은 한참 동안 자신을 붙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가 사랑한 건 며느리도, 손녀도 아니었어요.”

“그게 무슨 말이니?”

“어머니는 오직 ‘내 딸의 것’만 사랑하셨죠.”

서윤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단호했다.

“하지만 그 딸은 어머니의 집을 빼앗았고, 버림받은 아이는 어머니를 할머니라고 불러줬어요.”

복자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봄이가 서윤의 뒤에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저 할머니는 누구야?”

복자는 숨을 삼켰다.

한때 봄이는 자신을 볼 때마다 “할머니”라고 부르며 달려왔다.

하지만 이제 아이는 그녀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서윤은 잠시 복자를 바라본 뒤 대답했다.

“엄마가 예전에 알던 분이야.”

그리고 봄이의 손을 잡고 빗속으로 걸어갔다.

“서윤아! 한 번만 기회를 줘!”

복자가 울부짖었지만 서윤은 돌아보지 않았다.

몇 달 뒤, 지혜는 공항에서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복자의 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갔고, 준호는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복자는 모든 것을 잃고서야 자신이 평생 비교했던 두 여자의 진짜 모습을 보았다.

친딸은 어머니의 집을 빼앗았고,
며느리는 친딸이 버린 아이를 8년 동안 지켜주었다.

그러나 가장 잔인한 반전은 따로 있었다.

서윤이 떠나기 전까지도 복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이미 경매에 넘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서윤은 칠순 잔칫날 지혜의 서류를 막은 뒤 자신의 퇴직금으로 연체 이자까지 대신 갚아놓았다.

복자가 길거리로 쫓겨나지 않도록 시간을 벌어준 것이다.

끝까지 그녀를 지켜준 사람은 딸이 아니라 며느리였다.

복자는 매일 텅 빈 식탁에 혼자 앉았다.

식탁 한쪽에는 봄이가 두고 간 삐뚤빼뚤한 그림 한 장이 남아 있었다.

그림 속에는 네 사람이 손을 잡고 있었고, 맨 아래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할머니, 오래오래 우리 가족 해주세요.”

복자는 그제야 소리 내어 울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야 가족이 되고,
어떤 사과는 너무 늦게 도착해 끝내 받아줄 사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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